“그 아이는 왜 늘 기운이 없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과학적 답
아동은 아직 감정을 언어로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는 시기이며, 정서 상태가 행동에 그대로 투영되는 특징이 있다. 이런 이유로 아동이 조용하거나 무기력할 경우 종종 성격 문제나 일시적인 발달 지연으로 오해받기 쉽다. 하지만 일부 아동의 경우, 이러한 상태가 수개월 이상 반복되고, 학교생활이나 가족 내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단순한 기분 변화가 아닌 기분부전장애(지속적 우울장애)일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이 장애는 주요우울장애처럼 극단적인 슬픔이나 자살 사고가 뚜렷하지 않을 수 있지만, 아동의 자존감, 에너지 수준, 사회적 관계 형성에 만성적인 손상을 초래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정신건강 문제다. 아동의 기분부전장애는 하나의 원인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유전적·생물학적 기초 위에 심리적 반응, 가정 및 교육 환경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누적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는 점에서,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개입하는 것은 치료와 예방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본 글에서는 아동의 기분부전장애가 생기는 원인을 크게 생물학적 요인, 심리적 요인, 환경적 요인으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특히 아동기의 환경적 경험이 기분부전장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중심으로 깊이 있게 분석해보고자 한다.
생물학적 요인: 유전과 뇌 기능의 영향
기분부전장애는 유전적 소인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부모나 조부모 중 우울장애, 불안장애, 양극성 장애 등의 정서장애 이력이 있는 경우, 아동이 기분부전장애를 경험할 확률은 유의미하게 높아진다. 이때 유전자는 단순히 '기분이 안 좋아지는 성향'만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신경전달물질 시스템의 균형, 감정 처리 능력, 스트레스 반응 패턴 등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세로토닌,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과 같은 뇌 속 신경전달물질이 불균형하게 작동할 경우, 아동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정서적 복원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작은 실패나 무시에도 큰 상실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뇌 영상 연구에 따르면, 감정을 조절하는 전전두엽과 감정 반응을 일으키는 편도체, 기억과 감정을 저장하는 해마 등의 기능에 차이를 보이는 아동이 기분부전장애 경향을 보일 수 있다고 한다. 즉, 뇌 구조와 기능의 생물학적 특성이 아동의 기분 상태와 감정 처리 양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물학적 특성은 ‘소질’일 뿐이며, 환경적 보호 요소와 심리적 회복력이 함께 작동할 경우 장애로 고착되지 않고 건강하게 발달할 수 있다.
심리적 요인: 인지적 해석 방식과 정서 처리 능력
아동은 성장 과정에서 반복되는 경험을 통해 ‘세상을 어떻게 볼지’, ‘자신을 어떻게 정의할지’를 배우게 된다. 이때 형성된 인지적 틀은 이후 정서 반응과 행동 패턴에 큰 영향을 미친다. 기분부전장애를 가진 아동은 흔히 인지 왜곡 또는 부정적 자동사고 패턴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자기비난이나 무기력감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시험에서 한 문제를 틀린 경험을 전체적인 실패로 해석하거나, 친구의 무표정을 ‘내가 싫은가 보다’로 해석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왜곡된 해석 방식은 반복될수록 아동의 자존감에 영향을 미치며, 결국 ‘나는 항상 부족하다’, ‘나는 별로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다’라는 고정된 자기개념을 형성하게 된다. 또한 감정 표현과 조절 능력의 부족 역시 중요한 요인이다. 감정을 억누르거나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동은 내면에 불편한 감정을 쌓아두게 되고, 그것이 무기력이나 짜증, 공격성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이러한 심리적 요인들은 생물학적 요인과 맞물리며 기분부전장애의 발현 가능성을 높인다. 결국 아이가 어떤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반응하느냐는 평소 어떤 심리적 틀을 통해 세상을 인식하고 있는지에 크게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환경적 요인: 가정, 학교, 사회적 환경의 구조적 영향
기분부전장애의 원인 중 가장 개입 가능성이 높고, 동시에 영향력이 큰 요소는 바로 환경적 요인이다. 특히 아동기는 주변 환경의 영향을 정서적으로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시기이기 때문에, 일상적인 대화 한마디, 가정 내 갈등 분위기, 학급 내 또래 관계 등 모든 것이 아동의 기분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환경 요인은 부모의 양육 태도다. 감정적으로 민감하지 않거나, 정서적 반응을 억제하는 양육방식은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학습하게 만들고, 이는 감정 고립과 정서 둔감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과도한 간섭이나 비난 위주의 양육은 아동에게 지속적인 긴장감을 유발하며 자기비하를 강화시키는 환경이 된다. 또한 가정 내 갈등, 이혼, 경제적 스트레스 역시 아동에게는 위협적 환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가정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는 아동은 외부 자극에 대한 불안 반응이 커지고, 부정적 감정을 내면화하게 된다. 학교 환경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왕따, 따돌림, 교사와의 부정적 상호작용 등은 아동이 자존감을 형성하는 데 있어 치명적인 요인이며, 장기적으로 ‘나는 무가치한 존재’라는 인식을 강화시킨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 미디어 과다 노출로 인한 사회적 비교, 감정 단절, 수면 부족 등도 최근 들어 주목받는 환경적 위험요소 중 하나다. 이처럼 아동의 일상 환경은 감정을 성장시키는 보호 요인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정서를 억압하고 왜곡시키는 위험 요인이 되기도 한다. 부모와 교사는 환경적 요인을 정확히 이해하고, 정서적으로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회복 가능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기분부전장애는 이해 가능한 결과이자, 개입 가능한 현실이다
아동의 기분부전장애는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생물학적 취약성과 심리적 반응 방식, 그리고 환경적 스트레스가 맞물리며 서서히 형성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성격’이라고 말하는 것도, 들여다보면 사실은 감정 처리 방식과 환경 경험이 반복되어 형성된 결과물일 수 있다. 특히 아동기는 정서와 인지, 행동이 유기적으로 형성되는 결정적 시기이므로, 이 시기의 정서 문제를 가볍게 넘기지 말고 구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조기 발견과 개입, 그리고 아이의 감정을 존중하는 일상 속 태도 변화만으로도, 기분부전장애는 충분히 회복 가능한 정서장애가 될 수 있다. 아이의 무기력한 행동 이면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고, 그 이유는 단지 ‘나약함’이 아닌 도움을 요청하는 감정적 신호일 수 있다. 아이의 기분을 바꾸기보다,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고 보호해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가 아동의 기분부전장애에 대해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강력한 개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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